꽃을 소재로 한 꽃 그림집입니다. 대표적인 시인들 중에서 좋아하는 시 여러편을 올립니다.
라일락 이해인
바람 불면
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
빗장 걸었던 꽃 문 열고
밀어내는 향기가
보랏빛, 흰빛 나비들로 흩어지네
기쁨의 취해
어지러운 나의 봄이
라일락 속에 숨어 웃다
무늬 고운 시로 날아다니네
꽃 기형도
내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 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들국화 천상병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 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ㅡ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김용택
매화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봉숭아 도종환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내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 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가을 꽃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꽃은 사랑이고 기쁨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