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이지만 날씨가 너무 좋다
친구를 만나서 맛있는 찻집에 가서 차와 케이크 그리고 귤 양갱을 먹으면서 차가 제공하는 부드러운 맛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풀고 인생에 있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였다
시를 읽으면
우리의 마음의 감정을 시와 연결하게 되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것처럼 여운을 진하게 남기게 되는 것 같아요
류시화 시인 시 2 편을 부담 없이 읽고 힐링하세요
여행자를 위한 서시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을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혼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니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니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고구마에게 바치는 노래
고구마여
고구마여
나는 이제 너를 먹는다
너는 여름 내내 땅 속에서 감정에 농도를 조절하며
태양의 초대를 점잖게 거절했다
두더지들은 너의 우아한 기품에 놀라
치아를 하얗게 닦지 않고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도 넌 내 몸의 일부분만 허락했을 뿐
하지만 이제는 온 존재로
내 앞에 너 자신을 드러냈다
남자 고구마여
여자 고구마여
나는 두 손으로 너를 감싼다
내가 진흙 속에서 숨 쉬고 있을 때
세상은 따뜻했다
난 네가 없으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쌀과 빵만으로 목숨을 연명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슬픈 일
어떻게 네가 그 많은 벌레들을 유혹을 물리치고
돌투성이의 흙을 당분으로 바꾸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고구마여, 나는 너처럼 살고 싶다
삶에서 너처럼 오직 한 가지 대상만을 찾고 싶다
고구마여
우리가 외로울 때 먹었던 고구마요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결국 무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그러나 내 앞에는 고구마가 있다
생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넌 말하는 듯하다
모습은 바뀌어도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나 우리 모두의 곁에 있는 것이라고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고
그렇다, 난 모든 길들을 다 따라가 보진 않았다.
모든 사물에 다 귀 기울이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감히 돼지의 신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고구마요 너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희망은 나의 것이라고
서시 --- ( 어느 인도 시인의 시 )
누가 나에게
옷 한 벌을 빌려 주었는데
나는 그 옷을
평생 동안 잘 입었다
때로는 비를 맞고
햇빛에 색이 바래고
바람에 어깨가 남루해졌다
때로는 눈물에 소매가 얼룩지고
웃음에 흰 옷깃이 나부끼고
즐거운 놀이를 하느라
단추가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그 옷을 잘 입고
이제 주인에게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