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남 단편소설/노새 두 마리/연탄배달/아버지의 힘든 삶/양극화

2025. 7. 4. 00:33리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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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남 작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언론인입니다.

생애: 1932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2023년 5월 28일에 별세했습니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53년 <문예>에 단편 <쑥 이야기>가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작가의 초기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그리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성을 확인하려는 내용을 썼다

특히 1980년 언론 해직 이후 권력의 위선과 횡포, 지식인의 타락을 풍자하는 비판적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해학적 풍자와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산업화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습니다.

 

 

 

 

노새 두 마리 줄거리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서울 변두리 동네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연탄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마부로, 낡은 노새 한 마리를 부려 연탄을 나릅니다.

시대가 변하며 삼륜차 같은 새로운 운송 수단이 등장하고,

도시가 개발되면서 판자촌 옆으로 '문화 주택'들이 들어서는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의 가족이 사는 낡은 동네와 새로 생긴 동네 사람들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새 동네 사람들은 노새에 연탄을 싣고 배달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야 노새다"외치며 신기한 구경거리처럼 여기며 쳐다본다

 

2 년 전 말과 맞바꾼   노새가 들어와서 연탄배달을 하는 중에 회색털은 검은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나는 그런 노새를 정성껏 돌보아야 했다

 

어느 겨울,

아버지는 야트막한  동네 언덕길에서 많은 양의  연탄을 싣고 가던 중 마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연탄더미는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이 충격으로

노새가 달아나 버리고, 아버지는 망연자실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내 노새, 내 노새"하고 소리치며 노새를 찾아 동네 곳곳을 헤매지만

큰길로 달려간 노새를 찾으려고 헤매지만 , 끝내 찾지 못합니다.

 

노새를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아버지를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불평하거나 구경만 할 뿐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휘발유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자동차가 웬 말이냐고 애국자처럼 말하는 아버지의 오기를 느낄 수 있다

 

날이 저물고 노새를 찾지 못한 아버지는 대폿집에서 술을 마시며

"이제부터 내가 노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아버지의 가장으로서의 고단함과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다음 날에도 노새를 찾아 나섭니다. 

 

결국 노새를 찾지 못한 채, 경찰이 노새가 길거리에 다니면서  일으킨 피해를 물으러 집에 찾아옵니다.

아버지는 경찰서로 향하고,

'나'는 경찰서로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또 다른 노새 한 마리가 집을 나서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나'는 노새와 다름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고

아버지의 뒤를 쫓아가면서 끝난다

 

 

 

 

 

 

 

'노새 두 마리' 속 빈익빈 부익부

 

1.공간적 대비:

 

소설에는

'나'의 가족이 사는 낡은 판자촌 동네와 새로 지어진 '문화 주택' 동네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판자촌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 모여 사는 곳이며,

문화 주택은 부유하고 현대화된 삶을 누리는 계층의 공간입니다.

 

이는 부유한 사람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기존의 낙후된 환경에 머물게 되는 빈익빈 부익부의 물리적 표현입니다.

 

 

2.직업의 변화와 소외:

 

주인공 '나'의 아버지는 노새를 이용해 연탄을 배달하는 '마부'입니다.

이는 과거의 운송 수단이자 산업화 이전의 잔재와 같은 직업입니다.

 

반면, 도시에는 삼륜차 같은 새로운 운송 수단이 등장하며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 산업 사회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노새를 잃어버리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는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계층의 모습을 상징하며,

빈익빈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즉, 새로운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질 수 있습니다

 

 

3.노새의 상징성:

 

작품의 제목처럼 '노새'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첫 번째 노새는 아버지가 생계를 이어가는 실제 노새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노새를 잃고 "이제부터 내가 노새다"라고 말하거나,

'나'가 경찰서로 가는 아버지뒷모습을 보며

'또 다른 노새 한 마리가 집을 나서는 듯한' 착각을 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두 번째 노새가 됩니다.

 

이 두 번째 노새,

즉 아버지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마치 노새처럼 묵묵히 고된 노동을 감당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도시 하층민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이는 자본과 기술을 통해 더 큰 부를 축적하는 계층과 달리,

오직 육체노동과 땀으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계층 간의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자본이 자본을 버는 구조가 아닌,

끊임없이 노동력을 투입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빈곤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사회적 무관심과 냉대:

 

노새가 달아나자 사람들이 아버지를 돕기보다는 구경하거나 비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노새가 일으킨 피해를 물으러 경찰이 찾아오는 장면은

사회가 약자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양극화된 사회에서

부유한 계층이 빈곤 계층의 어려움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비난하는 모습을 반영하며,

사회적 연대가 약화되는 빈익빈 부익부 사회의 냉정한 면모를 드러냅니다.

 

 

 

 

결론적으로

 

'노새 두 마리'는 단순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1970년대 한국 사회의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경제적 불평등과 그로 인한

개인과 가족의 고통을 '노새'라는

상징적 대상을 통해 효과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노새 두 마리'의 아버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소시민의 대표적인 모습이고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성실함의 가치, 변화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

사회적 약자의 비애, 그리고 인간 존엄성과 연대의 중요성 등을 생각하게 하는 글인것 같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그림자를 여전히 비추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사회 현상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파고들어 고통을 주는지 문학적으로 성찰하게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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